1942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총정리|조선인 136명 희생·유해 발굴·류승룡 EBS 다큐·다시보기
1942년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는 일본의 해저 탄광에서 조선인 노동자 136명을 포함해 총 183명이 목숨을 잃은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사고가 발생한 지 80년이 넘었지만 희생자들의 유해 수습과 신원 확인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 사건을 다룬 EBS 다큐프라임 '1942 조세이 탄광'이 광복 81주년을 맞아 2026년 8월 10일과 17일 방송됐습니다. 배우 류승룡이 내레이션을 맡아 사고의 진실과 유가족, 일본 시민단체의 긴 여정을 전달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조세이 탄광 사고의 정확한 발생 원인과 조선인 희생자 수, 강제동원 배경, 유해 발굴 과정, 다큐멘터리 방송 내용, 다시보기 방법까지 자세하게 정리하겠습니다.

- 사고 발생: 1942년 2월 3일
- 사고 장소: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 조세이 탄광
- 전체 희생자: 183명
- 조선인 희생자: 136명
- 사고 원인: 해저 갱도 붕괴와 바닷물 유입, 안전을 경시한 채굴
- 유해 발굴: 2025년 첫 유해 발견, 2026년 추가 수습
- 다큐 방송: 2026년 8월 10일·17일 EBS1
- 내레이션: 배우 류승룡
🌊 1.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란?

조세이 탄광은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도코나미 해안에 위치했던 해저 탄광입니다. 일본어로는 장생탄광(長生炭鉱)이라고 하며, 바다 아래 갱도를 만들어 석탄을 채굴하던 곳입니다.
1942년 2월 3일, 탄광에서 대규모 수몰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해저 갱도가 무너지면서 바닷물이 밀려들었고, 지하에서 작업하던 노동자들이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총 183명입니다. 특히 조선인 노동자가 136명으로 전체 희생자의 약 74%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조세이 탄광이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음을 보여줍니다.
| 구분 | 내용 |
|---|---|
| 사건 명칭 |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
| 발생 날짜 | 1942년 2월 3일 |
| 발생 지역 |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
| 탄광 종류 | 해저 석탄 탄광 |
| 희생자 총수 | 183명 |
| 조선인 사망자 | 136명 |
| 일본인 사망자 | 47명 |
사고 자체도 비극이지만, 이후 오랫동안 희생자들의 유해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문제가 이어졌습니다.
사고 당시 갱도는 사실상 봉쇄됐고, 희생자 상당수는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이 사건을 다시 살펴보는 이유는 단순히 과거의 산업재해를 기억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왜 조선인 노동자들이 위험한 탄광에 집중적으로 배치됐는지, 사고를 막을 수는 없었는지, 그리고 희생자들의 유해가 왜 지금까지 바닷속에 남아 있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 2. 조선인 136명이 희생된 이유

조세이 탄광에서는 많은 조선인 노동자가 석탄 채굴에 동원됐습니다. 당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고, 전쟁 수행에 필요한 산업 생산을 위해 조선인 노동력이 일본 곳곳으로 이동하거나 동원됐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 자료에 따르면 조세이 탄광은 조선인 노동자 비율이 매우 높아 당시 '조선 탄광'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1939년부터 1941년까지 탄광 측은 1,630명의 조선인 노동자를 동원할 계획을 세웠으며, 1941년 10월 말까지 1,162명이 동원된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 과정에서 사용된 방식 중 하나가 이른바 '모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름이 모집이라고 해서 모든 노동자가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일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당시 기록에는 노동자들의 도주, 강압적인 통제, 열악한 숙소 환경 등에 관한 내용도 남아 있습니다. 특히 조선인 노동자들이 외부 출입과 생활에서 강한 통제를 받았다는 증언이 존재합니다.
조세이 탄광 사건을 단순한 자연재해나 일반적인 광산 사고로만 바라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 주요 쟁점 | 확인해야 할 내용 |
|---|---|
| 노동자 동원 |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력 동원과 모집 방식의 강제성 |
| 작업 환경 | 위험한 해저 갱도와 열악한 안전 관리 |
| 생활 통제 | 숙소 감시, 이동 제한 및 노동자의 도주 기록 |
| 전쟁과 생산 | 전시 석탄 증산 정책과 무리한 채굴 |
| 사고 이후 | 책임 규명 부족과 유해 수습 지연 |
여기에서 한 가지 구분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1942년 사고 당시에는 1944년 이후의 국민징용령 적용 확대에 따른 동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사건을 설명할 때는 식민지 조선인의 강제동원이라는 역사적 구조와 당시 개별 노동자가 어떤 제도와 경로를 통해 탄광에 들어왔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 3. 조세이 탄광 사고 원인과 당시 상황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바다 아래 갱도가 붕괴하면서 해수가 대량으로 유입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배경에는 더 복잡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태평양전쟁 시기 일본은 전쟁에 필요한 석탄 생산량을 확대하려 했고, 광산 현장에서는 안전보다 생산을 우선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해저 광산은 지하 공간 위쪽에 바닷물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육상 탄광보다 침수 위험을 신중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의 분석에서는 조세이 탄광이 안전 확보에 필요한 해저 지층을 충분히 남기지 않은 채 채굴을 진행했고, 갱도를 지탱하는 석탄 기둥까지 제거한 점을 사고의 구조적인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국 위험한 채굴이 이어지던 상황에서 갱도가 무너졌고, 바닷물이 지하 작업 공간으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당시 갱도 내부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순식간에 탈출로를 잃었고,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핵심은 사고가 단순히 바닷물이 갑자기 들어온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위험한 작업 환경과 전시 증산 정책 속에서 발생했다는 점입니다.
🕯️ 4. 80년 넘게 이어진 진실 규명

조세이 탄광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도 희생자들에 관한 기록과 유해 수습 문제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1976년 일본의 향토사 연구자가 조세이 탄광 사고와 조선인 희생자 문제를 사회에 알렸고, 이후 지역 시민들을 중심으로 역사적 진실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이어졌습니다.
1991년에는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라는 일본 시민단체가 결성됐습니다.
이 단체는 희생자 명단을 조사하고, 일본식 이름으로 기록된 조선인 노동자의 본래 이름을 확인하며, 유가족과 연락하는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또한 탄광의 흔적을 보존하고 사고 현장을 조사하면서 장기간 방치됐던 유해 문제를 다시 사회적인 관심사로 끌어올렸습니다.
이 과정을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연도 | 주요 내용 |
|---|---|
| 1942년 | 2월 3일 수몰 사고 발생, 183명 사망 |
| 1976년 | 지역 향토사 연구자가 조선인 희생 문제를 사회에 알림 |
| 1991년 |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일본 시민단체 결성 |
| 2024년 | 탄광 갱구 개방과 본격적인 수중 조사 추진 |
| 2025년 | 사고 83년 만에 인골 발견·수습 |
| 2026년 2월 | 추가 유해 수습 및 잠수 조사 중 사망 사고 발생 |
| 2026년 6월 | 한일 양국 DNA 감정 추진 및 시료 인계 |
| 2026년 8월 | EBS 다큐프라임 2부작 방송 |
이처럼 조세이 탄광 문제는 사고 당시에 끝난 사건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진실 규명과 유해 반환을 요구하는 역사적인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 5. 조세이 탄광 유해 발굴과 DNA 신원 확인

사고 발생 이후 수십 년 동안 사실상 접근하기 어려웠던 해저 갱도에서 유해를 찾으려는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2025년 8월에는 한국인 잠수사들이 참여한 조사 과정에서 희생자의 인골이 발견됐습니다. 이는 조세이 탄광 사고가 발생한 지 83년 만에 확인된 중요한 성과였습니다.
2026년 2월에는 두개골 등 추가 유해가 수습됐습니다. 다만 수중 조사 과정에서 대만인 잠수사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발굴 활동은 중단됐습니다.
일본 시민단체는 안전 문제와 유가족의 의견을 고려해 잠수 조사 재개에 대한 논의를 보류하고, 보다 안전한 방식과 공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발굴된 유해가 누구의 것인지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유골이 발견됐다고 해서 곧바로 조선인 희생자 중 특정인의 유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조세이 탄광에서는 일본인 노동자도 희생됐기 때문에 정확한 신원 확인이 필요합니다.
2026년 6월에는 일본 측이 DNA 감정에 착수했고, 감정을 위한 유골 시료가 한국 정부에도 전달됐습니다. 양국이 각각 분석한 결과를 공유하는 방식이 추진됐습니다.
그러나 2026년 9월 8일 보도 기준으로는 유가족 검체 확보와 한국인 희생자 신원 확인이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유해 발굴, DNA 감정 착수, 신원 확인 완료, 유족에게 반환은 서로 다른 단계라는 점을 구분해야 합니다.
| 진행 단계 | 의미 |
|---|---|
| 유해 발견 | 해저 갱도에서 인골 또는 유골 조각을 확인한 상태 |
| 유해 수습 | 발견된 유해를 안전하게 현장에서 인양한 상태 |
| DNA 분석 | 유해의 유전정보를 확인하기 위한 감정 진행 |
| 신원 확인 | 가족 관계와 다른 증거 등을 통해 희생자 신원을 특정하는 단계 |
| 유해 반환 | 신원 확인 후 유족에게 유해를 돌려주는 절차 |
유가족의 입장에서 최종적인 목표는 단순히 유골을 찾는 것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며, 사고에 대한 책임과 역사적 사실을 명확하게 남기는 데 있습니다.
📺 6. EBS 다큐프라임 '1942 조세이 탄광' 방송 내용

EBS는 광복 81주년을 맞아 조세이 탄광 사고와 진실 규명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2부작으로 제작했습니다.
작품은 사고 당시의 기록과 한국·일본 유가족의 이야기, 시민단체의 오랜 활동, 해저 갱도에서 진행된 수중 조사를 중심으로 구성됐습니다.
| 구분 | 방송 정보 |
|---|---|
| 프로그램 | EBS 다큐프라임 |
| 작품 제목 | 1942 조세이 탄광 |
| 방송 채널 | EBS 1TV |
| 1부 방송 | 2026년 8월 10일 오후 9시 55분 |
| 2부 방송 | 2026년 8월 17일 오후 9시 55분 |
| 구성 | 총 2부작 |
| 내레이션 | 류승룡 |

🎬 1부|그 바닷속에 사람이 있다
첫 번째 편은 1942년 사고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그리고 희생자들이 왜 오랫동안 잊혀졌는지를 추적합니다.
특히 일본 시민단체의 이노우에 요코와 관계자들이 약 35년 동안 자료를 찾고 희생자 이름을 확인하며 유가족과 만나 온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역사적인 사건을 숫자로만 접근하지 않고 실제 희생자와 가족들이 겪은 문제를 통해 보여준다는 점이 주요 특징입니다.
🎬 2부|우리를 기억해 주오
두 번째 편은 바닷속 갱도에서 희생자 유해를 찾기 위한 수중 조사에 초점을 맞춥니다.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잠수사들이 조사에 참여하고, 오랫동안 찾지 못했던 유해가 발견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또한 유해 발굴을 위한 조사 중 새로운 희생이 발생하면서 조사 참여자들이 마주한 안전 문제와 어려운 선택도 다룹니다.
1부가 잊혀진 사건과 희생자의 이름을 되찾는 과정이라면, 2부는 실제로 희생자를 가족에게 돌려보내기 위한 노력과 한계를 보여주는 편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 7. 배우 류승룡이 내레이션에 참여한 이유

이번 다큐멘터리에서 또 하나 주목받은 부분은 배우 류승룡의 내레이션 참여입니다.
류승룡은 그동안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문제를 알리거나 독립운동가 후손을 지원하는 캠페인에 참여한 이력이 있습니다.
EBS 역시 이러한 역사적 관심과 활동을 소개하면서 류승룡의 내레이션 참여 사실을 알렸습니다.
다큐멘터리는 희생자들의 기록과 유가족의 증언처럼 무거운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 작품입니다. 따라서 내레이션은 단순한 정보 설명을 넘어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류승룡은 1부와 2부 모두 내레이션을 맡았습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접했던 배우의 목소리를 통해 그동안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조세이 탄광 사건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이번 작품의 특징입니다.
다만 작품의 핵심은 유명 배우의 참여 자체보다는 그동안 잊혀져 온 희생자들과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시 사회에 알리는 것에 있습니다.
▶️ 8. EBS '1942 조세이 탄광' 다시보기 방법

본방송은 2026년 8월에 종료됐기 때문에 현재 시청하려는 경우 EBS 공식 다시보기 서비스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EBS 다큐프라임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프로그램별 다시보기 목록과 VOD 정보를 제공합니다.
다시보기 확인 방법
- EBS 다큐프라임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합니다.
- 다시보기 메뉴에서 작품 제목인 '1942 조세이 탄광'을 검색합니다.
- 1부 '그 바닷속에 사람이 있다'와 2부 '우리를 기억해 주오'의 제공 여부를 확인합니다.
- 영상이 제공되는 경우 안내된 로그인 또는 이용 조건에 따라 시청합니다.
※ 위 링크는 다큐프라임 공식 다시보기 목록으로 연결됩니다. 해당 작품의 개별 VOD 제공 여부와 무료·유료 이용 조건은 접속 시점의 EBS 안내를 확인해야 합니다.
방송 편성과 작품 소개를 먼저 확인하고 싶다면 EBS 공식 발표 자료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 EBS 공식 2부작 방송 정보 확인하기📖 9. 조세이 탄광 사건을 이해하는 세 가지 사례

조세이 탄광 사고를 처음 접할 때는 희생자 수, 강제동원 여부, 유해 발견 이후의 진행 상황이 혼동될 수 있습니다. 다음 세 가지 사례를 통해 구분해 보겠습니다.
예시 ① 조선인 136명은 전체 사망자 수일까?
아닙니다.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총 183명이며, 그중 조선인이 136명입니다. 나머지 47명은 일본인 노동자입니다. 따라서 역사 자료를 읽을 때 조선인 희생자 수와 전체 희생자 수를 혼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시 ② 조세이 탄광 노동자들은 모두 정식 징용으로 끌려갔을까?
그렇게 일괄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모집' 등 여러 형태의 노동력 동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모집이라는 형식과 실제 노동자의 자유의사에 따른 선택이 일치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당시 동원 기록과 통제 환경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예시 ③ 유골이 발견됐으니 유가족에게 모두 반환됐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유골의 발견과 수습 이후에도 DNA 분석과 신원 확인 등 여러 단계가 남아 있습니다. 2026년 9월까지 확인된 보도에서도 신원 확인의 어려움이 지적됐습니다. 따라서 발굴 성공을 곧바로 유해 반환 완료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 가지는 조세이 탄광 사고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구분해야 하는 사항들입니다. 각각의 기록과 절차를 구체적으로 이해할수록 사건의 역사적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 10. 자주 묻는 질문 TOP 5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앞바다에 있던 해저 탄광에서 발생했습니다. 갱도가 무너지면서 바닷물이 유입돼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조선인 희생자는 136명입니다. 일본인 노동자 47명을 포함한 전체 사망자는 183명입니다. 조선인이 전체 희생자의 약 74%를 차지했습니다.
아닙니다. 2025년 첫 유해가 발견됐고 2026년 추가 수습도 이루어졌지만, 전체 희생자의 유해 수습이 완료된 것은 아닙니다. 특히 수중 조사 중 사망 사고가 발생해 발굴 작업의 안전 문제도 중요한 과제로 남았습니다.
배우 류승룡입니다. 2026년 8월 10일 방송된 1부와 8월 17일 방송된 2부에 모두 참여했습니다. 작품은 EBS 다큐프라임을 통해 방송됐습니다.
EBS 다큐프라임 공식 다시보기 페이지에서 작품명을 검색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해당 영상의 현재 제공 여부나 로그인, 유료 이용 조건 등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별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 11. 결론|조세이 탄광 사고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는 1942년 2월 3일 발생한 해저 탄광 참사로, 조선인 136명을 포함한 18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는 식민지 조선인 노동자의 강제동원 문제, 전쟁 중 무리한 석탄 생산, 위험한 작업 환경과 부실한 안전 관리, 사고 이후의 책임 규명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특히 희생자들의 유해가 수십 년 동안 바닷속에 남아 있었고, 일본 시민단체와 한일 유가족, 잠수사들의 노력으로 뒤늦게 발굴이 진행됐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EBS 다큐프라임 '1942 조세이 탄광'은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기록과 증언, 실제 수중 조사 과정을 통해 살펴볼 수 있도록 제작된 작품입니다.
1부에서는 사고의 진실과 희생자들의 이름을 되찾는 과정을, 2부에서는 유해 발굴과 조사 과정의 어려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지 80년이 넘었지만 유해의 신원 확인과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과정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역사적 진실을 기록하고 희생자의 존엄을 회복하는 일 역시 계속돼야 합니다.
조세이 탄광을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사망자 숫자를 기억하는 일이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고 희생됐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 참고 자료: EBS 공식 방송자료(2026.8.), 동북아역사재단 조세이 탄광 역사 해설(2026.2.), 연합뉴스 유해 발굴·DNA 감정 관련 보도(2026.6.~9.). 유해 신원 확인과 발굴 재개 여부 등은 향후 추가 발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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